성약장로교회

성약문학
  1. 사진과 글
  2. 수필

새해 아침에 - 무엇이 새로운가?

조회 수 3709 추천 수 0 2010.01.02 11:46:45
배재천 *.152.47.17

 

무엇이 새로운가?

 

     어제 지던 해가 오늘 다시 떠오를 것이고, 어제와 같은 공기로 숨쉬며 또 내일을 살아갈 일이 분명한데, 이제 곧 새해 첫날의 휴식이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일터와 가정을 오가며 분주하게 하루씩을 살아갈 일상이 불을 보듯 뻔하기만 한데, 그리고 자식들은 좀 더 자랄 것이며 그와 비례해서 우리는 조금 더 늙어갈 것이고, 제 작년에서 작년으로 넘어오던 때와 작년에서 올해로 연결되어 가는 모양새가 별스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데도, 왜 자꾸 새해” 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새롭다고 이렇게 나는 새해를 맞으면서 감격하고 있는가?

해마다 정초에는 근사한 계획을 세우고 야무진 마음으로 한 해를 출발 해보지만 그 해를 마무리 할 때가 되면 언제나 빈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처럼 허전해 하던 내가 아니던가?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 에 공헌할 만한 원대한 꿈을 품은 것도 아니었고,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거룩한 계획을 세운 것 또한 아니었는데, 그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보자고 세운 소소한 계획들 마저 생각한 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는 허무함에 가슴을 치며 연말을 보낸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엇비슷한 자리에 서 있건만 어째서 마치 그 때 일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양 이렇게 신선한 마음으로 새 달력의 첫 장을 넘기고 있는 것일까?  

오래 전에 우리가 살던 낡은 집에 페인트 칠을 했던 적이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주택 페인트에는 문외한이던 부부가 감히 실내 전체를 페인트 칠을 하겠다고 붓대를 잡았으니,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순탄할 리가 만무하다. 천정을 칠할 때 페인트 방울이 눈꺼풀에 떨어져 하마터면 장님이 될 뻔 하질 않았나, 다 칠했다고 장담한 벽들은 칠이 마르고 나서 옆으로 비스듬히 보니 여기저기 얼룩이 져 다시 칠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었다. ‘이거 괜히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슬그머니 일었지만. 이미 페인트와 도구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고, 직장에 휴가까지 받아 놓았으니,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휴가를 탕진 해가며 천신만고 끝에 거의 마무리를 지어갈 무렵에 이르러서야 겨우 페인트 칠이란 어떤 것인지 알았고, 제법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붓을 놀리는 여유마저 생겼다. 마지막 방 하나를 남겨놓고 피곤하다 못해 천 근 같이 무거운 몸을 쉬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 또한 이 페인트 칠하는 일과 같은 게로구나. 잘난 척 붓을 놀려대 얼룩덜룩 하던 첫 번째 방은 나보다 똑똑한 녀석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쳐대며 부모 속을 썩이던 10대 시절과 흡사했고, 이제 뭐 좀 안다고 교만하여 붓을 너무 빠르게 휘둘러 또다시 두 벌 일을 해야 했던 두 번째 방은 혈기만 믿고 펄쩍펄쩍 뛰었던 20대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수시로 고개를 쳐드는 교만한 마음을 억누르며 비록 두 배의 시간을 소비 했지만 처음으로 반듯한 작품을 만들어 낸 세 번째 방은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았던 나의 30대요, 경륜과 욕망이 가까스로 하모니를 이루어 마치 숙달된 페인트 공이라도 된 것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칠하던 그 방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자문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나의 40대가 아니었던가 싶다.

어느덧 50대의 중턱에 앉아있는 나에게 아직도 인생의 페인트 작업은 끝나지 않았고, 내 손에는 여전히 붓이 들려있다. 이제 남은 부분만은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붓을 잡는 마음이다. 여기까지 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으니 차라리 앞으로 남은 일에 대해서만 생각해야겠다. 또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순간에 예술가가 생애 최후의 걸작을 위해 근엄하게 붓을 드는 마음으로 지나간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게 이 해를 맞기에, 그래서 내겐 ‘새해’라는 단어가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이다. 성취욕에 떠밀려 사는 시간을 줄이고, 그 대신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앞만 보고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동안 내가 잃고 살아왔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해야 하기에 ‘새해’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작하는 이 해가 저물어가는 그 때에는 거둘 것 없음에 너무 허무해 하지 않으리라, 이루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마음이 무너지지도 않으리라. 오히려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신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해이기를 다짐 하면서 말이다.

교만과 무지 때문에 엉망으로 칠해놓은 나의 실패작에 대해 한 번도 묻지도 벌 하시지도 않고 여기까지 데려오신 나의 하나님이 또 한 해를 주셨음에, 아니 ‘새해를 주셨음에 그저 감사하며 받을 뿐이다. “이번에는 좀 잘 칠해봐, 너는 잘 할 수 있어, 내가 알아라고 격려 하시며 내 손에 쥐어 주시는 새 붓을 순종하며 받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떠오른 해는 내게는 새로운 해였고, 내가 숨쉬는 공기도 새로 만들어 주신 공기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또한 새로운 마음이다.  

붓을 드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나의 새해’, 새 아침이다.                                          


라 비올라

2010.01.06 07:17:58
*.137.1.85

맞아요~~!새해라는 단어속에는 어쩐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것만 같은 설레임이 담겨있어요..새해 복많이 받으시구 건필하소서~~^^*~

이영미

2010.01.09 18:33:45
*.22.203.15

공감합니다..^^

설레임...이 없다면 새해라는 단어 또한 무의미할 것이 아닌가?생각해 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외계인(外界人) 아내 file

Raven Cliff 계곡 Hiking Trail Normal 0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style> /* Style Definitions */ table.MsoNormalTable {mso-style-name:"Table Normal"; mso-tstyle-rowband-size:0; mso-tstyle-colband-size:0; mso-style-noshow:yes; mso-st...

  • 조회 수 3905

연약한 자, 그대 이름은 '인간'이어라 file [1]

2010년 8월 21일 Chattahoochee River at HWY 41 연약한 자, 그대 이름은 ‘인간’이어라 늦 은 밤, 병원 응급실에는 몇 명의 환자들이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어딘가를 심하게 다치거나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

  • 조회 수 4179

호떡처럼 보이던 보름 달

호떡처럼 보이던 보름 달 아틀란타의 하늘이 눈에 뜨일만큼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다운타운이 그렇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요즘 들어서는 외곽 주택지대의 하늘도 언제나 누르스름한 먼지로 덮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며 수시...

  • 조회 수 3592

변기뚜껑 과 가정불화 [2]

변기뚜껑 과 가정불화 내가 제목으로 정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짝짝이 양말을 신은 것처럼 좀 어색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다루는 화제중의 하나인 ‘가정’ 이라는 단어와, 그와 반대로 그 가치로 보나 품위로 보나 도무지 글의 소재로...

  • 조회 수 3953

새해 아침에 - 무엇이 새로운가? [2]

무엇이 새로운가? 어제 지던 해가 오늘 다시 떠오를 것이고, 어제와 같은 공기로 숨쉬며 또 내일을 살아갈 일이 분명한데, 이제 곧 새해 첫날의 휴식이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일터와 가정을 오가며 분주하게 하루씩을 살아갈 일상이 불을 보듯 뻔하기만 한데,...

  • 조회 수 3709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