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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처럼 보이던 보름 달

조회 수 3592 추천 수 0 2010.03.15 21:55:09

 

호떡처럼 보이던 보름 달

 

 

틀란타의 하늘이 눈에 뜨일만큼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다운타운이 그렇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요즘 들어서는 외곽 주택지대의 하늘도 언제나 누르스름한 먼지로 덮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며 수시로 감상하곤 하던 푸른 하늘을 못 본지가 한참이나 된 것 같다. 몇 해전에 이 도시가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갑자기 인구가 증가했고, 그로인해 공기가 흐려지고 있다는 말이야 들었지만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퇴색해 가다니. 티없이 맑은 하늘, 좋은 물,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 꽃에 반해서 여기에 살기로 했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랜 세월을 정착하고 살아오던 이 곳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행여 오늘은 하늘이 다시 푸를까 일말의 희망을 품고 올려다 보는 출근길의 하늘은 매일 누렇기만 했다. 늦은 봄에 시작하여 하늘이 더욱 청명해야 하는 가을이 오기까지 계속되던 나의 가슴앓이는 그날따라 유난히도 하늘이 누르끄레 하던 어느 가을날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느닷없이 아내를 불러 이사 갈 곳을 알아 보자고 폭탄제의를 한 것이다.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20년을 살던 곳에서 갑자기 떠나자니. (실은 그 말을 하기까지 나는 혼자 수없이 망설이고 고민 했었다) 아내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다 못해 아예 말을 잃은 듯 했다. 덤덤한 침묵이 훑고 지나간 후에 아직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아내는 내게로 다가 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그랗게 뜬 그 눈은 분명히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니, 당신 또 보따리 쌀 궁리를 하는 거요? 애들이 한 두 살일 땐 휙휙 이사 다니며 살았지만 지금은 달라요. 근데, 왜 요즘 들어 멀쩡한 하늘을 가지고 자꾸 이러지요? 혹시 당신 눈이 좀…”

 

나의 코 앞으로 바싹 다가온 아내가 내 눈동자를 이리저리 살피고 눈꺼풀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당겼다 놓았다 하더니 이사는 접어두고 당장 안과에 가보라고 펄펄 뛴다. 이런 기막힐 일이 있나? 하늘이 흐려진 일을 두고 안과에 가 보라니. 내가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를 나를 눈병 환자로 몰아 붙이는 결론으로 몰고 가다니! 아니 이 사람이……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하늘뿐 아니라 물건들의 윤곽이 좀 흐리게 보이긴 했다. 우리 나이에 흔하다는 난시이거나 아니면 노안현상이겠지 하며 방관 해오던 터였다. 지금까지 아내 말 듣고 손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어흠, 어흠)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하던 나는 며칠 후 안과의사 사무실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판정’(?) 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단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양쪽 눈이 모두 내가 오랫동안 복용하고 있는 약들의 부작용으로 인해 백내장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빨리 수술 하지 않으면 시력을 더욱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저런! 그래서 하늘은 마치 매연에 덮힌 것처럼 누렇게 보였고, 최근에 올려다 보는 보름달의 윤곽은 인심 좋은 시골 장터의 호떡 마냥 테두리가 두툼했고, 별에도 여기저기 이상한 솜털이 삐죽삐죽 나 있었구나! 그래서 자동차 유리는 닦아도 늘 닦지 않은 것 처럼 맑지가 않았던 게로구나. 그런 걸 가지고 하늘을 보며 괴로워했고, 달과 별을 보며 실망했고, 낡은 유리창이라고 궁시렁 거리다가 급기야 공기 좋은 곳으로 옮겨 살겠다고 작심 하기에 이르렀으니, ‘무지의 소치란 바로 이런 나를 두고 한 말이던가.  

 

왼쪽 눈을 수술 받고 병원을 나오던 날, 나는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의심 많은 도마가 되어 내일까지 절대로 떼지 말라는 거즈를 빼꼼히 열고는 살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우!”

 

살짝 열어본 거즈 사이로 구름 한 점 없고 눈이 시릴 만큼 푸른 시월의 하늘이 내 눈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는것이 아닌가. 이거다! 나를 붙잡아 여기에서 20년을 한결같이 살아오게 했던 아틀란타의 그 하늘, 바로 이 하늘이었어! ! 하나님, 저 깨끗한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거즈를 닫았다. 그리고는 아직 수술 받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하늘을 보니 그 푸르던 하늘은 다시 내가 투덜거리던 그 하늘로 돌아가 있었다.

 

몇 주 후에 오른쪽 눈도 수술 받고 나서는 모든 것들이 다시 선명 하게 보였다. 이제부터는 비록 안경을 착용하고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하겠지만, 푸른 것은 푸르게 붉은 것은 붉게, 그리고 둥근 것과 모난것을 다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력을 되찾고 감사하며 뒤돌아 보니 얻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제부터는 내가 보는 색과 모양이 그 사물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우기기가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아직도 어색하고 불편한 안경이지만 착용할 때마다 애꿎은 하늘을 두고 우울해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는 누렇게 보이더라도 다른 이가 푸르다 하면 무작정 우기기 보다는 내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욱 자주 해야 할 것 같다. 그때 내가 내 눈만 믿고 보따리 챙겨 시골로 이사 갔었더라면 누런 하늘이 거기까지 따라 왔을 것 아닌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는 안경 너머로 호떡이 아닌 선명한 달이 휘영청 떠있고, 솜털 나지 않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아틀란타의 가을 하늘은 아직도 변함없이 푸르고 신선하며 역시 살기 좋은 곳이다. 이제 곧 봄이 오면 푸른 하늘과 분홍 철쭉과 하얀 독우드 (Dogwood) 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볼 때 마다 눈으로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고, 나는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감사의 말을 외칠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등산을 떠나기로 한다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그때 느닷없이 이사 가자고 말해 막히게 했던 억장을 풀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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